[리뷰] 머라이어 캐리 - 90년대 대표 디바의 전성기

지난번 화이트스네이크의 리뷰에서 언급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사이의 급격한 변화는 비단 록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시기의 변화는 구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세계사의 중대한 사건에 기인한 것인데, 특히 이는 거대담론의 붕괴라는 사회적 패러다임의 총체적인 전환을 야기했다. 그 여파는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 기회의 균등을 바탕으로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말 그대로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199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대규모의 흑인 폭동이 발발하면서 사회 전반은 온통 허무주의와 패배주의로 팽배해졌다.

 Quality Check

 Picture ★★ / ★★☆

 Sound ★★★ / ★★★

Title Sp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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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팝계에는 실로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허리케인처럼 불어 닥쳤다. 흑인들의 꿈을 대변했던 마이클 잭슨은 이내 백인을 동경하는 파렴치한 성추행범으로 전락했으며, 랩 음악의 전도사를 자임했던 MC 해머는 힙합을 백인에 팔아먹은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혔다. 이제 음악은 더 이상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었다. 커트 코베인은 자신이 쓴 가사처럼 스스로를 불태워버렸고, 게토의 살벌한 삶을 힙합으로 토해내던 갱스터 래퍼들은 실제로 서로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이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 직전에 등장한 머라이어 캐리는 1990년대 중반까지 무려 10곡이 넘는 넘버원 히트곡을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당대의 팝 디바로 군림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다른 여가수들이 차례로 뒤집어쓴 멍에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시나 이스턴부터 로라 브래니건, 신디 로퍼, 벨린다 칼라일, 티파니, 데비 깁슨, 폴라 압둘, 휘트니 휴스턴 등에 이르기까지 80년대를 호령했던 여성 팝스타들은 90년대 초중반 이후 가수 활동을 접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예전과 같은 명성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 가운데 예외적인 존재들이 마돈나, 재닛 잭슨, 카일리 미노그 정도인데, 사실 마돈나의 경우 1990년대 이후부터는 영화배우로의 활동이 두드러졌고, 재닛 잭슨은 저 유명한 ‘니플 게이트’ 사건과 비만 등을 통해 가십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감이 없지 않다. 카일리 미노그는 오히려 1990년대 중반까지는 그저 얼굴만 예쁜 가수로 머물다 이후 ‘섹스 심벌’ 전략으로 뒤늦게 전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른 특이한 케이스.

머라이어 캐리의 등장은 그야말로 화려했고, 그녀의 전성기는 실로 눈부셨다.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이 공개된 1990년부터 ‘Butterfly’가 나온 1997년 즈음까지 머라이어 캐리의 고공비행은 계속됐다. 각 앨범들은 예외 없이 넘버원 히트곡을 양산하며 밀리언셀러가 되었는데, 심지어 때가 되면 으레 출시되는 캐럴 음반마저 대성공을 거뒀을 정도. 그러나 그녀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바로 그녀의 뒤에 소니 뮤직의 사장 토미 모톨라가 버티고 있었다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머라이어 캐리의 성공에 모톨라의 힘이 적잖이 작용한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이는 참으로 판명됐다. 모톨라와 이혼한 머라이어 캐리는 마치 보란 듯이 실패의 쓴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마돈나의 성공에 자극받아 영화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후반 이후에 발표한 앨범들이 모두 저조한 성적을 거두는 한편 데릭 지터, 루이스 미겔 등 스포츠 및 연예계 스타들과의 염문설이 줄을 이으면서 그녀의 전성기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몰라보게 비대해진 그녀의 평상시 몸매는 기존의 팬들마저 낙담시키기에 충분했다. 머라이어 캐리 역시 80년대 스타들의 전철을 밟는 것인가.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그녀가 지난해 선보인 ‘The Emancipation Of Mimi’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물론 저메인 듀프리, 넵튠스, 스눕 독, 카니예 웨스트 등 쟁쟁한 인물들의 서포트를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이 앨범은 그녀의 드라마틱한 부활을 천명하기에 충분했다. 머라이어 캐리의 새로운 성공은 그녀의 화려했던 1990년대를 다시금 반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전 소속사 소니 BMG는 창고에 숨어있던 그녀의 전성 시절 라이브 실황들을 DVD로 선보였다.

음반사의 상술, 혹은 팬들을 위한 선물.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조금이라도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을 즐겨들었다면 당신의 선택은 후자가 될 것이다(사실 지금도 이따금씩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 딥 퍼플의 음반이 나오곤 하는데 적어도 팬들에게는 ‘우려먹기’가 아닌 새로운 컬렉션으로 위치하듯이 말이다).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두 타이틀은 그녀가 가장 빛나던 절정의 시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당시 트렌드 변화의 도화선이 된 <MTV Unplugged>이며, 또 다른 하나는 ‘Music Box’가 발매된 이후 행해진 뉴욕 프록터스 시어터 공연이다.

이 가운데 좀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MTV Unplugged>다. 1992년 EP로 공개된 동명의 앨범은 그야말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팝 음악에 혁명을 가져온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녀가 선보인 어쿠스틱 사운드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새로운 발견이었으며, 잭슨 파이브의 리메이크 ‘I’ll Be There’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앨범을 통해 계속해서 재기됐던 그녀의 가창력에 대한 의혹도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DVD에는 ‘I’ll Be There’를 비롯해 ‘Emotions’, ‘Someday’, ‘Vision Of Love’ 등 앨범에 수록됐던 7곡의 연주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으며, <MTV Unplugged+3>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3곡의 뮤직비디오가 추가로 수록돼 있다.

한편 별도의 제목이 달려있지 않은 뉴욕 공연은 ‘Hero’와 ‘Dreamlover’가 한창 차트를 달구고 있을 때였던 만큼 그녀의 최전성기 라이브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 이 공연은 1993년 추수감사절의 NBC 스페셜로 방영된 바 있다. 세트 리스트는 1~3집의 히트 넘버들로 구성돼 있는데,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머라이어 캐리가 그저 만들어진 스타가 아닌 충분한 실력을 갖춘 가수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요즘 인기 있는 거개의 여가수들이 쇼를 보여주는 데 치중하는 반면, 그녀는 리프레시 스프링스 교회 합창단과 함께 제대로 된 라이브 음악을 들려주는 데 몰두한다.

공연들의 의미가 남다른 만큼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면 좋겠지만, DVD의 구성은 예외 없이 무척 단출하다. 별도의 스페셜 피처는 전무하며, 심지어 오디오 역시 LPCM 2.0만을 지원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 가지 위안이 될 법한 것은 서플먼트가 없는 대신 두 타이틀 모두 중간 중간에 인터뷰나 그녀의 소박한 일상생활 모습을 담았다는 것인데, 사실 이러한 구성은 공연의 맥을 끊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화질은 기존의 VHS보다 별반 나을 게 없는 수준인데, 그나마 <MTV Unplugged+3>이 양호한 편이다. 반면 사운드는 넉넉한 정보량 덕에 둘 모두 충분히 즐겁게 들을 만하다. 이 모든 것은 결국 DVD 출시사가 현재 머라이어 캐리의 소속사가 아니기 때문일 터. 그래도 나쁘진 않다. 청순한 외모에 날씬한 몸매를 지녔던 20대 초반의 그녀가 사랑스럽게, 또는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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